
중독(Addiction)의 의학적 의미는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가 망가져 쾌락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뇌 질환’이다. 우리 뇌는 기쁨이나 자극을 경험한 뒤 높아진 도파민 수치를 낮춰 다시 원래의 안정적인 뇌 상태로 돌아오려는 신경계의 ‘항상성(homeostasis)’을 갖고 있다. 이 도파민의 항상성이 깨져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를 중독이라고 부른다.
강력한 자극(주류, 마약, 도박, 숏폼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 신경세포의 수용체 기능은 무뎌지고 항상성은 떨어지게 된다. 가벼운 일탈이나 초기 자극 단계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는 동안 뇌의 쾌락 회로가 자연스럽게 회복 재생된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선 만성적인 자극 노출 이후부터는 뇌 신경계의 항상성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서 일상적인 소소한 기쁨(수면, 식사, 대화 등)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되며, 강한 자극이 끊겼을 때 극심한 불안과 금단 증상이 생기게 된다.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뇌가 그 자극에 익숙해지고(내성), 같은 만족감을 얻으려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그림1. 중독의 종류, 악순환, 회복과 관리 (AI 생성 이미지)
중독은 원인에 따라 크게 물질 중독(Substance Additction)과 행동 중독(Behavioral Addiction)으로 나누어진다.
1. 물질 중독: 체내 들어가는 특정 물질에 의존하는 경우이며 금단 증상이 생긴다. 카페인, 니코틴 중독, 알코올, 수면제, 항불안제(안정제),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불법 약물, 탄수화물, 설탕, 에너지 음료 중독
1. 행동 중독: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서 뇌의 보상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경우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도박, 쇼핑, SNS, 포르노, 운동, 일, 음식, 관계 중독
수면제, 안정제 중독은 약국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중독의 예이다. 수면제, 안정제는 처방을 받아야 복용할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불안, 초조, 불안장애, 신경쇠약, 불면 등으로 쉽게 처방받아 복용하지만, 복용할수록 점점 의존성, 내성, 금단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중독의 보상 회로는 약물에 의해서도 활성화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약물 중독(drug addiction)의 기전이다.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중독도 마찬가지로 특정 약물에 노출된 후 쾌감을 느끼게 되면 다시 이 약물을 복용하려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사용되는 향정신성 약물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methylphenidate, 항불안제 또는 수면제로 사용되는 benzodiazepine 계열의 약물, 수면제로 사용되는 eszopiclone, zolpidem과 같은 benzodiazepine 수용체 효능제, 단시간 작용 전신마취제로 사용되는 propofol, 비만치료제로 사용되는 phentermine, mazindol, phendimetrazine 등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불안, 항우울제는 benzodiazepine 계열의 ‘알프라졸람’이다. 알프라졸람의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 그리고 미국 사회의 불안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ake your pills”에서 환자들은 “처음에 복용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라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알프라졸람은 오피오이드와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 표현될 정도로 오남용이 심각한 약물이다. “비정상적인 환경에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건 병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진짜 문제를 고치는 대신 향정신성 약물을 이용해 망가진 세상을 그냥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라고 경고한다.
수면제, 안정제를 처음 처방 받은 환자에게 필자는 항상 "이전에도 복용하신 적이 있나요?" 라고 먼저 묻는다. 얼마 전 알프라졸람을 처음 처방 받은 환자는 층간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 불안, 수면 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필자는 알프라졸람이 의존성이 생길 수 있는 약물임을 설명하면서, 경도의 우울이나 불면은 약물보다 정신 상담이나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안내했다.
다만 자살 생각, 심한 우울증, 반복적인 공황발작,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불면증 등은 전문가의 진료를 우선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얼마 되지 않은 가벼운 불안, 우울, 초조, 불면인 경우 일상에서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습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수면 습관 개선
불안과 우울은 수면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수면 부족은 불안과 초조를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 주말에도 기상 시간 유지하기
• 침대에서는 잠만 자기
• 잠들기 2~3시간 전 과식 피하기
• 오후 늦게 카페인 섭취 줄이기
• 취침 1시간 전 스마트폰, 태블릿 사용 줄이기
2. 규칙적인 운동
운동은 천연 항우울제라고 불릴 정도로 효과가 입증되어 있다. 운동은 ‘코티졸’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고 수면의 질을 향상시켜 우울감이나 불안을 해소한다. 빠르게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 골프 연습, 근력 운동은 30분씩 주 3회만 해도 도움이 될 수 있다.
3. 햇빛 쬐기
햇빛은 생체리듬과 기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 20~30분 정도 산책, 창문 너머가 아닌 직접 야외 활동은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햇빛은 기분, 식욕, 수면과 관련된 세로토닌 활성을 증가시키고, 밤에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4. 카페인과 알코올 조절
카페인은 일시적인 각성 효과로 기분을 들뜨게 할 수 있으나, 일부 사람들에게 불안, 심계항진, 초조감, 불면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알코올은 처음에는 졸리게 만들지만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5. 규칙적인 식사
혈당이 급격히 오르내리면 짜증, 집중력 저하, 불안감이 증가할 수 있다. 단백질, 채소, 통곡물, 견과류 중심의 균형 잡힌 식사가 도움이 된다.
6. 명상과 호흡 훈련
불안이 심할 때는 생각보다 호흡이 얕아지는 경우가 많다. ‘4초 들이마시기, 6초 내쉬기’ 이를 한 세트로 5분 정도 반복하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음성 가이드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명상 앱도 활용할 수 있다.
7. 사회적 연결 유지
우울할 때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지지만, 가족, 친구, 동료, 취미 모임과의 적절한 교류는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8. 인지 습관 점검
우울과 불안이 있을 때 흔한 생각은 "나는 항상 실패해." "앞으로도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야." "분명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이러한 자동적 사고를 인식하고 현실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상담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의 핵심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실패해."보다는 "이번에는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지만, 모든 일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고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시각을 되찾도록 돕는 훈련인 것이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뇌가 경험, 학습, 훈련, 환경 변화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운동, 명상, 상담, 수면 개선 같은 생활습관 변화가 불안·우울·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과학적 근거이다.

그림2.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시냅스(신경세포 연결)의 강화와 새로운 연결
일상 생활 습관의 변화와 함께, 가벼운 불안, 초조, 우울, 수면 장애에 도움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약국에서 구매해 복용할 수 있다. 근육 이완과 신경 안정에 도움되는 마그네슘 제재, 스트레스와 긴장감 완화에 도움되는 테아닌 (L-theanine),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제재들이 이에 해당된다.
비습관성 수면 유도제인 ‘독시라민’이나 ‘디멘히드라민’ 제재들은 일반의약품이며, 알약이나 시럽 등의 다양한 제형으로 출시되어 있다. 또한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대표적인 ‘천왕보심단’은 "심(心)과 신(腎)의 음혈이 부족해진 상태"를 보충하는 처방으로 불안, 초조, 가슴 두근거림, 불면에 보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수면제와 안정제로 흔히 처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 처음에는 불안이 사라지고 잠이 오는 느낌이 좋게 느껴지지만, 반복될수록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용량이 필요해지는 내성이 생기고, 끊으려 하면 오히려 더 심한 불안과 불면이 찾아오는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가벼운 불안, 우울, 초조, 불면이 찾아왔을 때, 처음부터 향정신성의약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수면 습관, 운동, 햇빛, 명상 같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먼저 시도해 보길 권한다. 변화가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뇌는 매일의 작은 실천으로 천천히 달라질 수 있다.
참고 문헌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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