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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편한 매거진 · 2025년 12월호 · 연말연시 술과 건강

술과 건강의 역사 술은 친구인가? 적인가?

벤치에 앉아 병과 잔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그린 중세 채색 필사본 그림

연말을 맞아 되돌아보는, 인류 9,000년의 음주 이야기

들어가며

연말이 되면 사람들의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회사 송년회, 친구들과의 모임, 가족과의 저녁 식사까지, 어느새 비어 있던 달력은 약속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 시기 약국에는 숙취해소제와 간 영양제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매년 반복되는 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정작 술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인류가 술과 함께 걸어온 9,000년의 역사와 그 속에 숨겨진 건강의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탁자에 둘러앉아 맥주잔과 와인잔을 들고 웃는 네 사람을 그린 일러스트

연말이 되면 왜 사람들은 다시 술을 찾을까? 연말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모이게 하고, 모임은 거의 언제나 술을 불러온다. 알고 보면 이 현상 역시 인간이 오랫동안 술과 맺어온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술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적 의미를 강화해왔다. 이러한 연말 분위기를 계기로 우리는 술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류 최초의 술 — 생존을 위한 발효 기술

술의 역사는 약 9,000년 전 중국 저장성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발효 음료의 흔적에서 시작된다. 당시 술은 지금처럼 즐거움을 위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오염된 물을 대신할 수 있는 생존 음료였다.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일부 제거되기 때문에, 저도수 발효 음료는 비교적 안전한 수분 공급원이었다. 즉, 인류 최초의 술은 건강을 해치기보다 오히려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고대 문명에서 술은 ‘약’이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술은 생존을 넘어 의학적 가치를 갖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포도주를 상처 소독, 통증 완화, 소화 개선 등 다양한 의료 목적에 사용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의학 문헌에는 수십 가지의 약술 레시피가 등장하며, 고대 중국에서도 인삼주, 구기자주 같은 약술이 치료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까지 술은 약물, 소독제, 진정제의 역할을 수행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소나무 아래 앉아 호리병을 들고 마시는 옛 차림의 남성을 그린 일러스트

중세 유럽 — 술은 에너지와 수분의 공급원

중세 유럽의 도시 환경은 위생적으로 매우 열악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탓에 발효 과정을 거친 약한 맥주와 에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한 음료로 여겨졌다. 수도원에서는 직접 양조한 술을 수도사와 여행자에게 제공했고, 노동자와 농민에게 맥주는 중요한 칼로리 공급원이 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물 대신 모두 맥주만 마셨다’는 이야기는 과장이지만, 맥주가 식사와 같은 개념으로 자리 잡았던 것은 사실이다.

근대 과학이 밝힌 진실 — 술은 독성이 있다

18~19세기 근대 과학의 발전은 술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화학자들은 알코올이 간에서 ADH와 ALDH 효소를 거쳐 분해되는 과정에서 강한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술을 처음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독성 물질’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술은 간 손상, 신경 독성, 중독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연관되어 연구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금주법 — 술은 사회악인가

미국은 1920년 술을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전국 금주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금주법은 밀주 제조 증가, 조직범죄 성장, 독성술 유통 등 더 큰 문제를 초래했고, 결국 1933년 폐지되었다. 이 사건은 술이 단순히 규제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남겼다.

‘적당한 술은 건강에 좋다?’라는 논쟁

20세기 후반 등장한 프렌치 패러독스 (프랑스인들의 역설)는 적당한 레드와인이 심혈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이후 연구들은 이러한 현상이 와인 자체보다는 식습관, 생활 방식, 사회경제적 요인 등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즉, 적당한 음주가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재해석이 필요하다.

와인병과 와인잔, 더하기 기호, X 표시가 된 찡그린 심장과 고기 접시를 그린 일러스트

21세기 과학의 결론 —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

WHO, CDC, 영국 NHS 등 주요 보건기관은 최근 ‘완전히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는 결론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알코올은 암 발생 위험 증가, 뇌 위축, 심혈관 질환 악화, 수면 질 저하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오늘날의 과학은 술을 줄일수록 건강에 유리한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결론 — 술은 인류의 친구이자 적이었다

술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녀왔다. 생존 음료에서 약으로, 영양식에서 독성 물질로, 그리고 현대의 건강 위해 요소로.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도 술은 인간의 감정, 문화,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이제 우리는 술의 장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맞는 음주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연말의 술자리에서 한 잔을 마신다면, 그 잔이 지닌 긴 역사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떠올려보는 것이 진정한 ‘현명한 음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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